부적응자―일방통행로 안에서 곁길 찾기 나의 글

노병가 by 기안84    http://kr.news.yahoo.com/service/cartoon/shelllist.htm?linkid=toon_series&work_idx=75




“실컷 맞다가 나중에 속시원하게 실컷 때리고, 그러면서 조직 사회의 원리를 제대로 터득하였다. 이제 시키는 대로 할 줄도 알고 시킬 줄도 안다.” 박노자「인간성을 파괴하는 한국의 군대」中에서.....

  걸레짱, 스위퍼, 바떼기, 챙, 열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의 말들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폭의 단절을 만들어낸 시절..... 무슨 골목대장 놀이하는 듯한 저 유치한 명칭들은, 아닌게아니라 참으로 생사를 건 인정투쟁 뒤에 주어지는 훈장이다. 하지만 어느 노래가사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상사람 얘기하듯이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으로만 간직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두들겨 맞거나 가혹행위를 당하기만 하였더라면 차라리 속 편했을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계급이 올라가면서 착취와 억압의 주체로 성장함으로써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모습을 서서히 닮아가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은 마치 일방통행로와 같아서 도무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곁길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예 윗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포기하고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받는 것이었다.

  한국 남자들에게 군 생활이 필수적인 사회화 과정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 부적응자가 된다는 것은 기존의 인정질서로부터 비켜섬으로써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가능성과 새로운 전망을 발견할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어딘가 망가져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일본과 마찬가지로(물론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군대가 해체되고 평화헌법이 제정되면서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도 학교와 군대는 사회질서 형성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보화시대니 창의성이니 하는 말들이 구가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끊임없이 노예가 재생산되고 있는데, 이는 정치가 사람들의 일상생활까지 일일이 규율하는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이다.

  그러나 요즘도 구타와 가혹행위로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말썽 많은 의경을 나오게 된 것이,―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축복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심연의 끝에서 구조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을 누군들 예상했을까. 제대하고 나서 정말이지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마음에 책을 잡게 되었지만,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결국 바뀌는 건 바로 나 자신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깨달음만이 남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공부를 하는 데 있어 단순히 내가 허영심으로 떨어질 수 없는 확고한 내적인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다만 한 줌의 윤리가 아쉬웠을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마도, 남들 다 겪는 과정인데 왜 너만 유독 이렇게 심각한 건지 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물음 속에 벌써 어느 정도 답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기억은 차라리 경험하지 않는 게 더 좋을 성격의 것이고, 재산이나 지위와 같은 기득권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한 어차피 굴종을 내면화하는 것이 곧 삶을 살아가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의식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공유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남들 하는 것처럼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상처받고, 적당히 위로받고 하는 피드백 작용을 벗어나고 싶었다. 세상에는 결코 치유되지 말아야 할 상처가 있는 법이 아닐까. 절대적인 것을 참지 못하는 부정(否定)의 정신으로, 마치 정교하게 건축된 구조물과 같은 이 사회에, 더 나아가 삶에, 온 힘을 다해 부딪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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